본문 바로가기

결혼 이야기

언니가 상견례한다는데 그냥 착하게 갔다올까요, 엎고올까요?



친언니랑 연끊은지 좀 되었어요.
원래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어서 마주칠일은 없고,언니는 그냥 평소처럼 싸운줄 알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제 인생에서 언니라는 존재를 지웠네요.

사람들앞에서는 똑부러지고 멋있는 여자일지몰라도 제 눈에는 그냥 가식일뿐.언니답게 행동한적이 없었어요.언니에게 저란 존재는 챙겨줘야할 동생이 아닌, 사람들과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빼앗아가는 경쟁자일 뿐이거든요.

어릴때부터 들었던 말이 넌 왜 그렇게 못생겼냐, 쪽팔리게 그렇게 입고다니면서 내동생이라고 하지 마라.눈마주치면 미친년이 뭘 꼴아보냐고 맞기도 했어요. (좀더 큰 다음에는 저도 참지않고 같이 때렸습니다) 저에게 언니라는 존재는 중요했기때문에 언니의 시선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터라 사춘기때까지 제가 못생기고 찌질한 아이인줄알았어요.

그런데 크면서 알게되었는데 제가 괜찮은 얼굴이더라고요. 아직까지 혼혈이냐는 말을 들을만큼 이목구비가 뚜렷한 편이에요. 나중에 알게된 거지만 어릴때 사람들이 저한테만 예쁘다는 말을 해서 언니가 무의식중에 상처를 많이 받았었나봐요. 그래서 언니는 자존감이 낮아  눈,코,지방이식,가슴 등 성형을 많이 했어요. 저같은 얼굴이 되고 싶었대요.


크면서 언니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많았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그래도 언니니까, 그래도 언니품이 그리워서  내가 다시 손내밀어야지 하면서 참았던게 몇번인지 헤아릴수도 없네요.


예를 들면요,

제가 대학생때 혼자 유럽여행가서 여행의 막바지에 예약해둔 호텔에 도착했는데, 통장 잔고가 다른 여행지에서 보증금으로 묶여서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그때 언니한테 연락했더니 "나 차사려고 돈모으고 있어서 너한테 만원도 못보내주니까 아빠한테 연락해봐."였어요. 정말 저렇게 말했어요. '만원도 못준다'라고. 
그런데 아빠는 카톡 메신저 사용방법을 모르시고 저는 해외유심이라 문자연락도 어려운 상황이라 언니한테 대신 말해달라고 하니까 "나 바쁘니까 니가 아빠한테 직접 연락해."였어요. 아빠한테 연락할수있는 어떤 방법도 없다는걸 알면서 말이죠. 가족도 날 모른척하는데 외국인친구들이 자기 카드번호 알려주겠다 대신 예약해주겠다 난리가 났더라구요. 감동받았지만 그래도 친구에겐 손벌리지않고 혼자 할수있는데까지 해보겠다 하고 현지에서 어떻게 어떻게해서 간신히 해결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아빠에게 들은 얘기는 언니는 차를 현금으로 사지 않았고, 아빠 카드를 빌려서 결제했다고 하더라구요. 저에게 단돈 만원이라도 보내줄수있는 상황이었던거죠. 저는 언니 선물로 가방사느라 내가 갖고싶은 가방은 사진만 찍고 포기했는데, 제가 참 우습더라고요.

그때부터 언니와의 관계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때까지 언니에게 아무리 욕먹고 맞았어도 전 언니를 정말 사랑했거든요.
지금도 언니를 사랑하지만 이제 제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에 제 자신을 위해서 언니로부터 제 마음을 보호해야겠다고 다짐했던거예요. 


명절에는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저희가 어머니가 안계셔서 외갓집에 저희끼리만 가거든요. 언니가 자기가 운전할테니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뭐라도 사가게 마트 들렀다 가자고 해서 하나 고르고 있으려니까 자기한테 기름값을 달래요. 자기가 명절선물을 사기 싫었던거죠. 그래서 내가 선물 계산한다고 했는데 언니의 그런 방식이 당황스럽고 기분이 좋지 않아서 표정관리가 안되었나봐요. 표정이 왜 썩었냐고, 혼자 또 삐졌냐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말싸움으로 번져서 저는 진심으로 같이 가고싶지가 않아서 내려서 전철타고 간다고 하니까 미친년이 똥고집만 쎄다고 그러면서 문닫으라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가족끼리 당연한게 어딨냐고....가족이지만 당연한건 없으니 기름값을 줘야하고 그 말을 내가 먼저 꺼내야했다고 저를 비난했어요. 저는 아빠가 운전하실때 한번도 기름값을 낸적이 없는데.. 언니를 너무 가족처럼 생각했나봐요.


그리고 제 마음을 정리하기로 결단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어요.

저의 아픈 이야기를 용기내어 털어놓는만큼 다른 사이트나 페이스북으로 퍼가지말아주세요.



제가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복용했었어요. 얼마전부터 다시 복용하고 있고요. 슬픔이 너무 커서 몸이 못버텨서 몸에서 이런저런 통증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원인모를 질환이 생겼어요.. 류마티스관절염과 섬유근육통이 생겼어요. 하루에 두번씩 근이완제와 진통제를 먹어야 일상생활이 가능해요. 언제까지 먹어야할지 기약이 없어요. 약을 먹어야 밤에 악몽을 안꾸고 잠을 잘수있고요. 그래서 매일 짧은 낮잠을 자야 컨디션 유지가 가능하고, 장시간 힘든 활동은 어렵고 자주 쉬어줘야해요. 이 상황을 가족들도 알고있지만 심리적이거나 신체적인 케어를 받을 수도 없었어요. 언니는 원래부터 저에 대한 걱정이 없었고, 아빠한테 대학병원 검사받고와서 진지하게 말씀드리니 하시는 말씀이, "그래? 나도 당뇨약 평생 먹어야하는데."
...

그래서 제가 더 슬픔을 느끼나봐요.
그래서 제가 더 세상에 혼자 남겨진것같은 기분인가봐요. 저에게 유일한 진짜 가족이었던 엄마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져요.

아무튼 그런 제 상황을 언니도 알고있었는데, 싸울때 언니가 해서는 안될말을 했어요.

"너는 정신병자니까 다시 정신병원좀 꾸준히 다녀"

제가 엄마의 죽음때문에 정신과 다니기 시작한거 뻔히 알고있으면서... 항상 저의 고민이나 저의 상황을 약점으로 잡아 저를 공격하기 위해 사용하더라고요.

이 싸움도 왜 시작되었냐면, 언니랑 여행 같이 가기로 하고 얘기하고 있었는데 자기는 액티비티같은거 많이 즐기고 싶은데 저때문에 못즐길까봐 자꾸 걱정을 하는거예요. 너는 옆에 사람까지 피곤하게 만든다면서요. 그말도 맞는데, 저는 해외여행 다닐때 외국인 친구들이랑 이런 트러블이 한번도 없었거든요. 저도 옆에 사람 분위기에 맞춰주느라 피곤해도 참을때가 많고, 저도 액티비티 좋아해요. 그런데 가족이라는 언니입에서 저런얘기가 먼저 나오는게 너무 슬픈거예요. 저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컨디션은 좀 어떻냐는 말 단 한번도 못들어봤어요. 아니 어떤 외국인들은 다리없는 친구를 여행시켜주기위해 돌아가면서 업고 여행다닌다는 기사도 있는데, 가족이 친구만도 못하니까... 이대로 여행가면 거기가서 또 트러블생기고 싸울게 뻔하니까 같이가봤자 서로 기분만 상할것 같은거예요. 

그래서 그냥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차분하게 얘기하기위해 노력하면서-있잖아, 비행기표는 당일 취소는 수수료가 없는데 그렇게 할래? 라고 물어봤다가 내인생에 최고 미친년은 너라면서, 지가 잘못해놓고 지혼자 또 삐져가지고 지랄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제 잘못이 뭐냐구요? 언니한테 본가에서 제 여행준비물좀 택배로 보내달라고 했는데 당연하게 언니가 보내줘야되는것처럼 '부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예의없이 굴었대요. 그래서 제가 최소한의 예의도 없었던거에 대해 사과해야한대요. 

그래서 저는 정신병원 다시 다니라는 둥 막말을 듣고 이제부턴 제 인생에서 언니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어요.

그러다 오랜만에 아빠랑 통화했는데, 곧 언니가 상견례를 한다고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아빠도 이런 상황알고 계시고, 아빠도 언니를 포기했어요. 언니가 아빠한테 지금까지 해준게 뭐가 있냐면서 소리지르고 욕했거든요. 아빠는 제가 우리집의 정신적인 가장이래요. 아빠는 언니랑 둘이 저만 두고 눈을 못감겠대요. 언니 도움받을 생각하지 말고 좋은 친구들 사귀어서 친구들 의지하면서 살라고 하실 정도예요. 그럼에도 상견례 자리는 한번 눈감고 나오는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딱 한번만이라고요.

언니는 자기 성격 그대로 남자친구한테도 쌍욕하면서 온갖 분노를 풀어대요. 남자친구는 언니를 너무 사랑하고 착해서 다 받아줘요. 남자친구 가족들도 언니를 너무 예뻐하신대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예쁘게 원피스 입고 나가서 어른들과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면 언니에게 플러스가 될 수 있을거예요.

그런데 저는 가기가 싫네요. 

언니 결혼식도 가기 싫어서 언니 결혼하기 전에 빨리 유학이나 이민 가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래야 결혼식에 제가 없어도 사람들이 덜 수근대지 않을까 싶어서요. 언니와 공통적으로 알고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요.

제가 못된걸까요, 아빠 소원대로 상견계자리 나가서 혹시 언니 중절수술했던거 모두들 알고 결혼 진행하시는거냐고 여쭤보는 상상을 하게 되네요. 남자친구는 이사실 아직도 모르는걸로 알고 있거든요.

저.. 모든 상처에서 자유롭고 당당하게, 멋있게 살고 싶어요. 사람들이 맑고 밝다고 했던 제 모습을 되찾고 싶어요.

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지혜로운 분들의 조언 부탁드립니다.



------------------------추가

시간내서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잘 참고해서 결정하겠습니다..
댓글들의 답변을 추가글로 한자리에 올리려고 하는데, 번거롭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1.상견례에 꼭 가지 않아도 된다는 글이 있는데, 정말인가요?? 자매가 꼭 참석 안해도 자리이면 빠져도 합리화할수있을것같은데요.. 어차피 지역이 거리가 3시간정도 걸리니까 멀어서 못간다고 하려다 원래 가족이 다 참석하는거면 제가 없으면 이상해보일까 아빠가 걱정하시는 것 같아요.

2.찍소리 못하게 밟지 못할바엔 피하는게 낫다는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언니처럼 파이터 성격이나 말투도 아니라서 말싸움이든 몸싸움이든 항상 지거든요.
괜히 중절수술 얘기 제입으로 꺼냈다가 나중에 저의 관계를 작정하고 망칠수있는 타입이에요.

3.가족치료를 저도 너무나 받고싶었어요. 하지만 치료가 필요하다는 부분을 본인들이 인정하지 않으니 시작조차 어렵네요. 제가 작성한 언니의 말투에 항상 '너 또 삐졌냐'가 등장하는걸 보시면 아시겠지만 언니는 그동안 제가 받은 상처나 우리 사이에 있었던 트러블이 '제가 혼자 삐져서'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엄마가 살아계셨을때 한번은 가족들을 모아놓고 '둘째가 저렇게 마음을 닫고 앞으로 나아가지못하고 있는건 아빠와 언니에게서 받은 상처때문이다. 둘째에게 사과하고 보듬어줘야한다.'라고 했다가 언니는 내가 뭘했냐며 노발대발 난리였어요.

4.가족이라고 무조건 부탁을 들어줘야하냐는말.. 공감하면서도 공감하기 어렵네요. 어려울때 도와주고 서포트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존재가 가족 아닌가요? 특히 해외체류시에 예기치못한 문제가 생겼거나 타지생활중에 본가에 있는 짐이 필요할때 가족이 아니면 누구한테 연락해야하나요? 저희 가족은 그런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제 인생에서 가족들에게 부탁해본적이 저 예시외에는 별로 없어요. 특히 금전적인걸로 부탁하고싶지않아서 늘 아르바이트를 투잡, 쓰리잡을 뛰었고 학비도 제가 장학금으로 해결했습니다.
제가 조언을 부탁드린 문제는 '언니가 내가 필요할때 안도와줬어요 나빠요'가 아니라 '어린시절부터 저에게 언어적,신체적,심리적 폭력을 가해온 언니의 결혼을 앞두고 어떻게 대처하는것이 현명한 것인가'가본질입니다.

언어폭력이라고 하니 한가지 생각나는 일이 있네요.
샤워를 하던 언니가 언니방에서 수건을 가져다줄 것을 부탁했어요. 언니가 방에 걸려있다고 했는데, 저는 본가에서 생활하지 않기때문에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돌아가서 언니한테 수건을 못찾겠다고 하니 저에게 뭐라고 한줄 아세요?
"니 사람이 얘기할땐 듣냐? 사람이 얘기할때 안 쳐들으니까 남자친구랑 헤어지지."
만나던 사람과 헤어지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저에게 한 말입니다. 저것보다 훨씬 심하게 얘기했는데 저정도밖에 기억이 안나네요. 저의 아픔을 저에게 상처주는데에 이용하는 사람이라 그 이후로 남자친구가 생겨도 언니에게는 절대 비밀로 하고 있어요.

제가 십대초반에는 언니가 자꾸 욕하고 때리니까 저도 참다가 말대꾸를 하기 시작했는데, 언니가 저같은 년은 죽어야한다고, 죽이고 싶다고 주방에서 칼을 들고 왔었어요.



사실 지금 언니와 결혼 얘기가 오가고 있는 남자는 오래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언니가 뺏은거예요. 언니말로는 남자가 언니한테 반했다고 하는데, 제가 봤을땐 언니가 '남자가 좋아하게 만들게' 꼬셨을거라 생각해요. 그 여자분 울고불고 만신창이가 됐던걸로 알고 있어서 흔히 말하듯 바람 핀 댓가를 받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잘되니 저도 의아하네요. 둘이 서로 사랑하니 제가 훼방놓을 이유는 없지만 그냥..이런일도 있구나 싶네요.


아, 한가지 더 정말로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은 부분은, 만약에 다른분들이 저의 상황이라면 축의금은 얼마정도 하는게 좋을까요..?
언니의 인품상 제가 축의금도 안하면 '니가 인간이냐'는 소리만 들을것같고 평생 제 마음도 불편할것 같아서 이부분이 정말 고민입니다.. 


------------------------추가2


댓글 감사합니다. 쓴소리도, 따뜻한 얘기도 모두 저에게 필요한 말씀이네요.
제가 제 입장을 적다보니 언니의 입장이 보이지 않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적어보려고 해요.

언니는 사춘기때 노는 무리에 들어가면서 변하기 시작했어요. 하필 그 타이밍에 부모님 두분이 모두 늦게까지 자영업을 하게 되어 방과후에 노는 무리들과 몰려다닐 자유가 생긴거죠. 그때 저희 부모님이 경찰서에도 불려가고, 학교에도 여러 번 불려갔어요. 저희 엄마는 밤마다 가슴을 치며 우셨고요. 그때 저는 엄마를 끌어안으며 나는 엄마말 잘들을게,하며 같이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막내지만 어리광을 부릴수 없었고, 눈치도 많이 보고 엄마처럼 속으로 삭히고 희생을 택하는 성격이 되었어요.

저로 인해 받은 언니의 상처에 대해 엄마 돌아가신 뒤에 진솔하게 얘기를 한 적이 한번 있었어요. 사람들과 부모님이 저만 예뻐하는 것 같아 그부분이 상처였대요. 언니 말에 의하면 저의 성격도, 외모도 부러운데 사람들이 칭찬하고 예뻐하니까 상대적인 박탈감이 들었나봐요. 부모님이 나만 예뻐하는것도 속상한데 제가 예쁨받을 행동을 하고, 언니가 못되게 굴면 부모님한테 이르니까 그게 얄미웠나봐요. 어떤 분이 말씀하신대로 첫째만의 상처인 것 같아요. 엄마의 육아일기같은걸 봤었는데 저는 항상 언니옷이나 물건을 물려받는게 당연했는데, 어쩌다가 저에게 새 물건을 사주면 동생만 사줬다고 난리를 피워서 똑같은걸 사줘야했대요. 저도 언니한테 대들때도 있고 싸울때도 있지만 항상 제가 양보를 해서 엄마는 언니가 동생챙기는거보다 동생이 언니를 더 생각한다고..동생이 언니같다 뭐 이런 말씀을 하시기도 했어요. 어떻게 보면 부모님의 중재방식에서 언니의 비뚤어진 부분까지 충분히 안아주지 못했던게 아닐까 싶네요. 다른 이야기도 있는데 이것까지 쓰면 또 너무 길어져서 이만 생략..

그리고 택배사건은 제가 부탁한다는 말을 안한게 맞고 언니 입장에서는 딱딱하게 느껴졌을수도 있어요. 본가에 남아있는 짐에서 필요한게 이거이거 있는데 택배 좀 보내줘 라고 했어요. 이모티콘 없이..

저는 제가 좋은걸 가지거나 꾸미거나 하면 언니가 너무 질투하고 저를 깔아뭉개고싶어하는걸 알고 있어서, 저 나름대로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터득해서 그 부분을 안건드리고 살고 있었어요. 언니 자존감 높아지도록 예쁘다고 칭찬해주고, 어차피 같이 셀카 찍으면 항상 제 얼굴이 크게 나온걸 올리니까 아예 일부러 더 앞으로 가서 언니 얼굴이 더 작아보이게 찍기도 하구요. 언니 앞에서 저의 외모를 깎아내리며 자학개그를 하기도 했어요. 그러면 언니가 웃으면서 흡족해했거든요.

이렇게 쓰고보니 제 잘못도 크네요. 저는 어차피 힘이 없으니까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는데, 그게 제 자신을 깔아뭉개도록 허락하는 방법인지 모르고 있었어요..

똑같이 가족간에 상처가 있는 입장에서는 윗사람이, 그리고 기쎈사람이 더 유리하죠.
평소에는 똑부러지다는 말을 듣는데 가족, 언니문제 만큼은 완전히 젖어들어 질질 끌려다니고 있었네요. 아빠도 마찬가지에요.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아빠가 혼자 계신데 반찬 뭐해서 드시는지 딸이 챙겨야한다’는 부담감이 크다는 거예요. 당뇨합병증도 조심해야한다는데 안부라도 묻지 않으면 내가 나쁜 것 같아요. 본가에 있을때는 언니는 거의 항상 인스턴트음식을 사먹어서 요리를 하지 않아 제가 가족들 먹을 반찬이나 국을 만들었는데 다시 독립하고나서 신경안써도되니 세상편하긴하더라고요. 여러분들 조언해주신 댓글 캡쳐해두고 마음약해질때마다 보면서 제 따귀라도 때려야겠어요 ㅠㅠ


그리고 저희 아빠와의 일화에 대해 자세히 적지 않았는데도 다들 정확하게 아시네요. 저도 알고 있어요, 아빠가 절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거. 그 나름대로 저를 챙긴다 생각하겠지만 아빠는 자기 자신의 안위가 제일 중요하고 나는 아빠/너는 내 딸로 태어난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엄마도 그랬고요. 내 와이프, 나에게 밥과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저는 정말로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끔 혼자 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멍하니 사람들을 보고 있을때가 있어요. 가족이 저런거구나 하면서..
사실 이것보다는 그 울분이 더 커요. 난 이제 엄마갖고싶은거 다 사주고 생활비도 드릴 능력이 되는데 불쌍한 우리엄마 호강 한번 못해보고 가셨다는거. 아직도 지금 내 인생이 꿈같고 이 꿈에서 깨어나고 싶고 그래요.

그렇지만 제가 바라는 가족을 갖기 위해 도망치듯 일찍 결혼하지는 않을거예요. 그걸로는 저를 근본적으로 구원해줄수 없다는걸 알고있거든요. 누군가에게 내 행복을 위탁하고 기대는 순간부터 저는 그 어깨가 자리를 비우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위태로운 사람일거예요. 그래서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이 노력해왔고, 아직도 많이 슬픔에 젖어있지만 혼자서도 잘 지내고 있어요. 가끔 순간적으로 죽고싶다는 충동이 들때가 있지만 지금까지 잘 이겨내왔듯이 앞으로도 이겨낼게요.